영원한 데미안 헤세
내가 아는 유일한 헤세는 데미안이다.
처음 데미안을 접한 것은 중학교 시절. 두 페이지나 읽었을까? 더 이상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그리고 20대가 돼서야 또 한 번의 도전. 역시 데미안은 어렵고 이해도 힘들고 책장은 넘어가도 다시 앞으로 되돌아오길 반복했다.
글자체의 어려움을 느껴서 책 읽기를 멈추게 했던 책중에 하나가 바로 데미안이다.
다들 읽는 책을 나는 못 읽는구나.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데미안은 내게 있어서 전개가 빠르지도 흥미롭지도 않았던 책이다.
40이 넘어서야 데미안이 눈에 들어왔다.
뭐든 다 때가 있다더니 나에게 책 읽기는 특히 데미안은 그랬나 보다.
어쩌면 내 생이 끝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고전이라 힘겹게 또 읽어 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데미안의 선과 악은 여전히 어려운 주제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와 함께 나도 그 굴레에 처넣었다. 끊임없이 생각했어야 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하루를 살아 낸다는 것 어른이 되어가야 한다는 것 그 속엔 끝없는 선과 악의 갈등이 난무한다.
이 나이가 되고보니 그런 것들이 마음에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데미안을 읽었다면 오롯이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해를 하며 읽었다면 큰 충격에 빠지지 않았을까 싶다.
데미안을 읽는 동안 나에게 헤세는 의문투성이 선생님 데미안이었다.
죽음을 이야기할 나이
나이 쉰은 이런 나이인가 보다.
쉰이 되어 가는 길목에 몇 가지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일들이 생겼다.
첫 번째는 나의 사적인이야기 이고 두 번째는 나의 큰 나무 아버지의 늙음을 마주해야 했을 때, 세 번째는 친구의 예고 없는 죽음이었다. 가장 큰 충격은 세 번째였다.
꼬박 일 년 동안 연락이 없던 그녀는 발병하고 딱 일 년 만에 예고도 없이 인사 한마디 없이 그렇게 아프다 지인들의 곁을 떠났다. 충격이 너무나 컸다.
내게 나의 죽음이 더 구체화 되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죽음에 대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죽음은 관계의 선과 악을 떠나 가장 어려운 주제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 찾아본 책이 바로 헤세의 "죽음에 관한 아름다운 사색'이다.
직접적인 죽음을 목전에 두고 쓰인 글은 없다.
헤세의 삶은 늘 요양을 해야만 하는 삶이었지만 그 불안 속에서 노년의 하루하루를 수필과 시로 남겼다.
이 책에서 헤세는 자연스러운 나이 듦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 나의 나이를 거부하지 않는 것, 나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 일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헤세는 내가 알고 있는 데미안이 아니었다. 상냥하고 때로는 엉뚱한 개구쟁이고 마음이 몹시 따뜻한 정말 큰 어른이다.
죽음 마주하기
나의 이 글은 책 소개 글 이라기보다 나의 죽음 준비기가 더 맞겠다.
책을 읽으며 내내 느낀 점은 살아간 시절이 달라도 우리가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것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글 한 줄에 격하게 눈물이 핑 돌기도 하고 박장대소하기도 하는 나를 보며 더더욱 그런 공감의 늪에 빠져든다.
그래도 여전히 나의 죽음 앞에서는 당당할 수 없고 불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죽음이 이 세상에서의 나의 의식을 단절시키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내일 당장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고 현대인의 평균 수명이 83.5 세라지만 평균수명은 말 그대로 평균일 뿐이다. 내가 앞으로 기억할 수 있는 나의 생이 몇 년이다 더 될까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적어도 어느 누구에게도 예고장 없는 죽음 앞에서 난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지 조금은 명확해지는 기분이다.
정리를 좀 해 보자면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기, 어떤 것이든 끊임없이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아이의 마음으로 세상 바라보기, 부정보다는 긍정의 말로 말하기, 겉만 어른은 안되기, 늦었다 생각 말고 하고 싶은 일들 차근차근해보기, 마음은 조금 더 따뜻해 지기를 실천해 보기로 한다.
나도 헤세처럼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헤세의 말처럼 삶에서 죽음도 자연스러운 일이니 말이다.
"젊음을 보전하는 일과 선을 행하는 일은 쉽다.
일체의 비열한 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는 일도
그렇지만 심장의 고동이 희미해질지라도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는 일
그것은 배우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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